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명언의 홍수 속에서 ‘나의 언어’를 찾다
- 도서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저자: 스즈키 유이
- 특징: 2025년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스트셀러 소설
처음엔 괴테의 명언 출처를 추적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고 나니,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왜 남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설명하려 할까.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소소하고 담백한 일상 이야기로 잔잔하게 문을 여는 소설을 만났다.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화제를 모은 스즈키 유이의 첫 장편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이다. 화제가 된 책이라 궁금한 마음에 펼쳤는데, 예상보다 훨씬 묘한 경험을 주는 책이었다.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자신이 책 속 주인공 도이치의 사위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이치 이야기를 꺼내면서 도이치가 작성한 듯한 글이 있는, 실제로 접속할 수 있는 URL 까지 하나 등장시킨다. 그냥 설정용 장난인가 싶어 넘길 수도 있는데,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직접 들어가 보면 ‘博藝’라는 사이트의 한 페이지가 실제로 열린다. 제목은 「未発表のゲーテ書簡について」. 글은 학술 에세이처럼 1절, 2절… 번호가 매겨져 있고, 티백 태그 사진(도판)과 각주, 참고문헌, 심지어 “2027년 1월, 센다이에서” 같은 날짜 표기까지 붙어 있다.
나는 또 굳이 참지 못하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굳이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읽어보았다. 사이트에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어이없게도 ‘어? 이 책 소설이 아니었나, 실화인가, 에세이였나’였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인 도이치라는 일본 작가/교수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다만 마지막에 적힌 날짜를 보고 나서야, 실재하는 글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결국 작가의 설정이었다. 좀 더 실제같아 보이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사소하지만 독자가 직접 무언가를 찾아보게 하기 위한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꽤 재미있는 장난이자, 이 소설의 분위기를 단번에 각인시키는 장치였다.
1장의 시작은 부모님의 결혼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도이치의 딸 노리카가 예약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괴테 연구자로 이름난 도이치는 아내 아키코, 딸 노리카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홍차 티백의 꼬리표에서 뜻밖의 문장을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 괴테 (Goethe)
자타공인 괴테 전문가인 도이치에게 이 낯선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런 순간에 그가 사랑하는 괴테의 문장이 하필이면 본인에게 왔다는 데에서 작은 감동을 느끼긴 하지만, 그는 학자다운 집요함으로 이 문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에 오른다.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주인공의 소소한 주변 이야기, 연관되어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들, 그리고 답을 찾는 강박이 만들어낸 듯한 괴테의 꿈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섞인다. 그렇게 이 소설은 그의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에 걸친 도이치의 괴테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는다.
명언이 넘쳐나는 세상, ‘괴테’라는 이름의 무게
도이치가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명언과 관련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너무 많은 인용구나 인물들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신기하게도 그 내용들은 이야기의 큰 줄기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한 번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이 점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특히 도이치가 독일 유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던 독일인 룸메이트 요한과 농담처럼 나누었던 일화가 재밌었다. 그리고 여기서 책 제목이 등장한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으면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이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농담은, 맹목적으로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고 권위에 기대려는 사람들에 대한 도이치의 깊은 불신과 엮이며 소설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 잡는다. 유명한 이름 하나만 붙으면 말의 무게가 달라지는 세계를, 이 소설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꽤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장황한 학술적 탐구에서 몽환적 미스터리로
소설 중반부로 갈수록 도이치의 학자로서의 괴테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인용구들을 짜깁기하는 학계의 허영심을 비판하는 듯한 내용이 이어지면서, 처음엔 잔잔한 일상 소설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어느새 제법 깊고 무거운 사유로 들어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사는 갑자기 꿈 이야기로 접어들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순간 잘못 읽었나 싶어 앞부분을 다시 넘겨보기도 했다. 명언의 진위를 쫓는 학술 스릴러 같았던 이야기가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며 묘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책장을 덮을 즈음, 도이치를 괴롭히던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하게 되면서, 사랑과 언어를 둘러싼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것이 괴테의 말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유명한 누군가의 말을 빌려온다. 사실 기억력이 나쁜 나로서는 인용을 하는 것도, 인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을 대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나 인용 없이 잘 설명한다는 건 아니다. 비유나 인용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의 말을 정확히 가져오는 능력과, 내 마음을 내 언어로 말하는 능력은 분명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나만의 언어로 무언가를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아주 값진 능력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내게 그 능력이 크지 않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처럼 수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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