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공부의 시작점 ― 오래 마실수록 더 어려워지는 이유
전통 찻집에서 시작된 생각 하나
주말에 새로 생긴(?) 전통 찻집을 다녀왔다.
가봐야지라고 눈여겨보았던, 지도앱에 찍어둔 찻집이다.
내 지도앱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전국 찻집 리스트가 제법 길다.
그래서 언제 찍어둔 가게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찍어둔 곳이 많다 보니 내가 처음 가보는 것이지, 새로 생긴 집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니 오픈한지 4~5년쯤 되었다고 했다.
방문한 곳은, 다구를 제공해주고 손님이 직접 차를 우려 마시는 찻집이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호를 깨뜨리거나 다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깨진 것을 보상한다고 해도, 찻집 주인도 손님도 마음이 불편하긴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걱정을 무안하게 만들 만큼,
다구를 직접 사용해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찻집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다구가 특별히 튼튼해진 것도 아닐 텐데, 주인들이 용감해진 건가 싶다.)
차의 종류도 많이 바뀌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찻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차는 녹차와 청차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녹차에 세작·중작, 청차에 동방미인이나 철관음을 추가로 적어둔 집이면
제법 그럴듯한 구색을 갖췄다고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유럽의 홍차 문화 영향인지,
다양한 베리에이션 차뿐 아니라 전통차의 선택 폭도 훨씬 넓어졌다.
보이차를 파는 곳도 많아졌고,
주말에 방문한 집에는 GABA 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차에 본연적으로 함유된 성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추가적인 처리를 통해 함량을 늘리는 방식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차를 접하는 문턱을 낮춘다면,
그것 또한 요즘 차 문화의 한 모습일 것이다.
찻집의 분위기 역시 많이 달라졌다.
인사동에 있던 전통 찻집의 이미지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방문한 곳 역시도 모던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액자 같은 모양의 통유리를 통해 주변 경관을 그림처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차를 마시러 왔다기보다는, 잠시 쉬어가라는 공간에 가까웠다.
이런 찻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차 공부에 대한 기록의 시작
이런 변화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를 마시는 방식뿐 아니라 차를 대하는 태도 자체도 함께 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집의 모습이 달라진 것처럼,
나 역시 오랜 시간 차를 마시며 나만의 방식으로 차를 이해하고, 조금씩 공부해오고 있었다.
이 글은 특정 찻집을 소개하거나 특정 차를 설명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내가 차를 마시며 공부해온 내용과 관점을 하나씩 정리해보려는 기록의 시작이다.
30년간 이어진 나만의 차 루틴
나는 차를 아주 오래 마셔왔다.
10대 때부터 마셨으니 제법 오래되었다.
여행을 갈 때면 굳이굳이 차 텀블러라도 챙겨가 차를 마신다.
사무실에서는 찬찬히 앉아 차를 제대로 우려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지만,
나의 아침은 빠르게 다호에 여러 차례 우려 머그컵에 그득히 따른 뒤,
그 잔을 들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차 향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된 지도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하루도 거르지 못하는.
왜 차 문화는 커피처럼 퍼지지 않았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어떤 차를 마시면 좋으냐고, 어디서 차를 사면 좋으냐고.
묻기는 하지만 실제로 차를 마시는 생활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찌 보면 ‘차를 우리는 행위’와 ‘천천히 마시는 시간’ 자체가 요즘의 생활 리듬과 잘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차 문화가 커피만큼 쉽게 퍼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늘 비슷한 조언을 한다.
차를 잘 마시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마셔보라고.
최대한 간편하게, 최대한 간소하게 일단 시작하라고.
티백도 괜찮지만 가능하다면 원재료만큼은 잎차로.
아주 조금 번거롭더라도 잠깐 멈춰서 물을 끓여서.
다호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으니 티 텀블러로.
그렇지만 스테인리스보다는 유리나 도기로.
그렇게 하루 한 잔이면 충분하다고.
(이 정도도 간소하지는 못 하려나…)
차 공부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과거 다인들이 해왔던 방식 그대로 차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나 편리하게, 너무 쉽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차는 언제나 공부의 대상이자,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였다.
차를 많이 마신다고 해서 차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오래 마실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물의 온도 하나, 잎의 양 조금, 우림 시간 몇 초의 차이로 차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차 공부의 핵심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반복과 관찰,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믿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오래 차를 마셔오며 깨달은 것은 하나다.
차는 나를 바꾸기보다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솔직하게 드러내 준다는 것.
바쁜 날엔 차가 괜히 떫고,
마음이 편안한 날엔 같은 차가 유난히 달다.
비 오는 날엔 차분해진 기분에 차 맛이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엔 괜히 셀레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차를 공부한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더 잘 알아차리기 위해서.
차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요즘 찻집들을 보며 느끼는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택지는 많아졌고 방식은 자유로워졌지만,
차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좋은 차를 마신다는 것은 값비싼 차를 마신다는 뜻도,
복잡한 다구를 쓴다는 의미도 아니다.
찻집이든 어디든 잠시 앉아 차를 우리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마시는 시간.
어쩌면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알아차리는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차 공부는 계속된다
아마도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찻집을 찾아다니고, 낯선 차를 마시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늘 쓰던 다호에 익숙한 차를 우리며 하루를 정리할 것이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차의 맛과 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늘 나를 설레게 한다.
같은 차라도 산지와 계절, 우리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차 맛을 즐기는 일은 곧 차를 공부하게 되는 일로 이어졌고,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