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 여자 개발자 일대기 #3

롤모델은 모두 남자였고,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개발이 ‘현실’이 되었을 때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개발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이게 내가 만든 거라고?”

내 코드가
실제 서비스가 되는 경험은
학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다.

수업을 위한 코드가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쓰는 코드가 되었을 때
개발은 결과가 아니라 책임이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스카웃된 수석 연구원들, 그리고 거리감

미국 회사의 한국 연구소였다.
어느 날 수석 연구원 몇 분이 스카웃되어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스카웃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생소했다.

높은 몸값을 받으며 입사를 했던 그분들은
문제를 늘 해결했고
설명은 늘 명확했다.

회의에서 그들은
‘왜 안 되는가’보다
‘어디서부터 다시 보면 되는가’를 먼저 이야기했다.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신들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분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때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그게 세상이라고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장면에서
‘여자 개발자’가 아니라
그저 ‘아직 멀었다고 느끼는 주니어 개발자’일 뿐이었다.


질문해도 되는 사람이 되기까지

묻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처음엔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귀찮아할까 봐.

그런데
언제나 늘, 친절하게 답해주셨고
방향을 짚어주셨다.

정답을 주기보다
생각해야 할 지점을 알려주었다.

굳이 본인의 시간을 할애하여
더 나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더 알아야 할 일을 제시해주셨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 순간부터
내겐 목표가 생겼다.

단순히, 잘 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에 빠져 살았고, 그게 좋았다

그렇게 일에 빠져 살았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신입 직원이 물었다.

“아기가 몇 살이에요?”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동료들의 정적…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이제 그런 질문을 받는 나이구나.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결혼이 싫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일이 너무 재미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기회를 놓쳤을 뿐이다.

누가 막지는 않았다.
다만
누가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너무 즐거웠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지금의 나, 그리고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

나는 지금도
개발자로 일하는 게 너무 좋다.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게 설레도록 너무 좋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나를 보며
    “저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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