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적절한 좌절 – 몸만 자란 어른들에게

제목이 던진 질문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좌절이 적절할 수가 있을까. 적절한 좌절을 겪으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좌절이라는 것은 적절한 양으로 오지 않기 때문에 좌절 아닌가? 좌절은 보통 피해야 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것인데, 적절할 수가 있다고? 그런데 이 책의 결론은 오히려 좌절이 부족한 지금의 어른과 아이들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김경일 교수는 유튜브를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이후로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게 되는 저자이다. 막연하게 느껴오던 감정이나 상황을 명확한 언어로 말해주고, 원인을 짚어주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명확한 해법까지 건네주기 때문에 언제나 잘 읽힌다. 그리고 늘 마음에 깊이 와닿는 문장들이 많다. 이번 책도 사이사이 줄 쳐둔 곳이 꽤 많이 남았다.

이 책이 말하는 것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와 20년 경력의 소아정신과 의사 류한욱 원장이 함께 쓴 책으로, 지금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적절한 좌절의 부재’와 ‘분리-독립의 실패’로 진단하고 있다.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묵직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이와 상관없이 적절한 좌절이 필요하다는 것. 어린 시절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그 좌절을 제때 경험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것이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이다. 어른이 되어서라도 좌절에 잘 대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적절한 좌절이라는 말에는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실패 경험’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단지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크기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좌절을 견디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감정 조절과 문제 해결 능력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힘도 함께 기를 수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이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어른이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실수, 혹은 삶의 예기치 못한 굴곡들이 바로 그런 성장의 기회가 되어줍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마주보는 용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생후 36개월까지의 분리-독립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나친 칭찬과 불필요한 보호로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빼앗긴 아이는, 결국 감정 조절 실패, 자기 통제력 부족, 자아 미형성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몸만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그렇다고 거창한 좌절을 겪는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적절한 좌절인 것이다. 엄마와 내가 한 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부모와 나와의 거리를 익히는 그 과정 전체가 바로 좌절이라고 볼 수 있다.

공부는 잘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 부모가 정해주는 길을 따르는 아이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거나 쉽게 분노하는 어른들, 자기중심적인 인물들로 피로감이 커지는 조직, 이런 다양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면 분명 공감 가는 챕터가 있을 테다. 아니, 어쩌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만 자란 어른들의 유형들

내게는 특히 책의 2부가 마음에 남았다. ‘독립하지 못한 어른들’이라는 파트인데, 거부 민감성이 높은 사람, 관계적 공격성이 높은 사람, 늘 타인의 기준을 좇는 사람, 모든 걸 붙잡고 있어야 안심하는 사람, 회복탄력성이 유난히 낮은 사람, 세상이 나만 미워한다 생각하는 사람, 혹은 언제나 늘 좋은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각각의 유형을 챕터로 나눠서 이야기하고 있다.

2부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심리 개념을 내 주변 혹은 내 내면에서 종종 마주하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바꿔 보여주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자꾸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이건 내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이거 누가 생각나는 듯한데.’ 나르시시즘, 거부 민감성 같은 개념들이 막연하게 ‘성격’의 문제로 여겨왔던 것들인데, 알고 보면 어린 시절의 분리-독립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 신선하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 자신만 들여다봐도 충분하지 않던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 상태, 돌이켜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마음의 결정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어디서 꼬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과거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는, 어린 시절 탓만 하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이 갑갑하다는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까. 이 책이 반가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발달 단계에서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는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어떻게 회복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와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안내해준다.

가장 마음에 남은 개념: 인격

줄을 가장 많이 그은 부분은 ‘인격’의 정의였다. 이 책은 인격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격은 성격 위에 쌓아 올린 태도, 감정 조절 능력, 타인을 대하는 방식까지 — 삶의 태도의 총합이다.

즉, 성격은 타고나거나 이미 형성된 것이니 바꾸기 어렵지만, 인격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 감정을 다루는 능력, 관계를 맺는 태도 등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 평소 ‘성격은 바뀌지 않을지라도 태도는 바꿀 수 있다.’는 내가 오래 믿어온 생각이기도 하다. 굳이 뇌가소성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나는 그 의견에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타성에 젖어 어쩌면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말이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를 깨달았다.

한 번의 성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한 번의 성장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 자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당부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의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정의인가를 매번 기꺼이 고민하는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한 번 깨달아서 딱 굳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질문하는 태도, 이게 핵심이에요.

읽고 나서 오래 남는 책이 있고, 덮는 순간 잊히는 책이 있지만, 이 책은 분명 전자이다. 나의 이상한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게 하고, 동시에 그것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건네주는 책. 무엇보다도 이 책은 어린 시절의 결핍을 변명으로 남겨두지 않고, 지금의 삶을 다시 다듬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탓만 하고 싶지 않은 어른, 그러면서도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은 어른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 미래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철학, 깊은 사고, 정체성, 그리고 적절한 좌절이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잘 자라서 결국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지키고 싶으며,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즉, 심리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줄 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지할 수 있을 때 타인에게도 훨씬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피터슨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남의 실수에도 관대하고, 갈등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내가 나에게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미소 지을 여유가 생기는 거죠. 결국 좋은 관계는 ‘내가 나를 괜찮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서 정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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