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굿 리스너의 진화적 생존기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나 – 나는 다정한 것일까? 살아남을까?
나는 스스로를 ‘굿 리스너’라고 생각한다. 자타공인이니까, 꽤 믿을 만한 사실일 것이다.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상대에게 진짜로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일은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게다가 나는 공감 능력이 과한 편이라, 듣다보면 내가 더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용히, 다정히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다정한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는 다정한 자인가? 그렇다면 과연 진화적으로 강자인가, 약자인가?”
“굿 리스너인 나는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다정한 사람은 약자라고 늘 생각했다.
거창하게 진화의 오류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강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생각이 깨질 수 있을까?
정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인가?
(사실은, 최재천 교수님 팬이라 크게 고민하지 않고 덥썩 집어들었다.)
적자생존의 오해 – 다정한 호모 사피엔스의 반격
대부분 ‘적자생존’ 하면 강자가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적자’는 흔히 오해하는 신체적 적자 즉, 강자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술 더 떠, 브라이언 헤어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진화에서 살아남은 것은 ‘다정한 자’라고.
사실 다윈이 처음 fittest 라고 썼을 때의 의도도 신체적 강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라는 다윈을 말처럼,
적자라는 단어 자체는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봐야한다고.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특별히 똑똑하거나 힘이 세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 즉 다정함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다정함과 그를 기반으로 한 협력은 진화의 약점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다정함의 핵심, 자기가축화
당연하게도 이 책의 주제는 책 제목처럼
진화적으로 어떻게 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지에 대한 사실을 아주 구체적인 근거와 실험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힘”이나 “두뇌”의 크기 만으로도 우리를 이길 수 있었던 네안데르탈인도
이 “다정함”으로 물리친 호모사피엔스의 위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
알다시피 침팬지의 인지능력도 많은 면에서 우수하다. 우리와 침팬지는 수많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크게 차이 나는 한 가지 능력이 있다. 침팬지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도로 의사소통을 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다정함의 핵심은 ‘자기가축화 가설’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과 달리 스스로를 ‘길들인’ 존재였다.
폭력성을 줄이고, 감정 조절을 통해 협력 가능한 개체들끼리 진화를 이어간 것이다.
개도 마찬가지이다.
소나 돼지처럼 사람이 개를 가축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이미 개 스스로가 자기가축화 과정을 끝낸 후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와 같이 진화적으로 살아남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 개도 다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다정함이 만든 또 다른 얼굴
다정한 호모사피엔스가
왜 이렇게 자주 극단적이 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죽이게 되는지도 이 다정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힘들게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바로 지금도 지구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지 않는가?
왜 다정함으로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가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전쟁을 이렇게 일삼는 것일까?
바로 이 다정함이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잔인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공감의 회로를 일부러 차단하는 기능,
내 무리가 아닌 이들에겐 공감을 멈추고, 배제하며, 심지어 비인간화하는 메커니즘이
이 책의 후반부를 관통하는 강한 메시지였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또한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마음이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망의 활동을 둔화시키는 능력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는 눈감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이 맹목성은 편견보다 훨씬 더 어두운 힘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오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런 자들은 공격해도 무방해진다. 규칙도, 규범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 접촉의 힘
나는 지금도 조직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일하고 있다.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해야할 때,
때로는 불신이 쌓인 상황에서 도무지 협업이 불가능해 보일 때,
“어떻게 이 벽을 넘지?” 고민할 때가 자주 있다.
책은 말한다.
아주 작은 접촉이라도, 한 번의 눈맞춤이라도,
우리가 타인을 ‘내 무리’로 인식하게 만드는 그 짧은 순간이
비인간화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왜 접촉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내집단의 구성원들이 위협받을 때, 평소에는 타인이나 외집단에게도 무리 없이 잘 느끼던 공감능력을 차단시킨다. 이에 외부자들도 위협받는다고 느껴 상대 집단을 비인간화하고, 여기에서 보복성 비인간화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그 위협받는 느낌을, 아주 잠깐만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다른 종류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답성 인간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집단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사회적 유대감이 더 많이 형성되며 타인이 지닌 생각에 대한 감수성도 전반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우리 모두가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다.
나의 현실적인 경험에서 비추어 보자면
같이 먹는 밥 한 끼가,
같이 어울리는 잠시 잠깐의 시간이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내 인생을 바꾼 존재 – 나를 길들인 우리집 강아지
나는 애견인이다. 10년차.
애견인이 되기 전에는 강아지를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우리 인간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는 존재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식사 도중 강아지를 챙기기 위해 일어서는 친구들을 보면 의아했다.
‘밥 시간이 좀 지나면 안 돼?’
‘강아지한테 우리가 밀린다고?’
그런 나였는데, 지금은 저녁 약속이 길어지면 내가 먼저 일어난다.
일이 일찍 끝나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집으로 직진한다.
집을 길게 비워야 하는 여행도 함부로 안 다닌다.
집에서 나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를 위해 전부를 걸고 있다는 감각이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처음 느껴본 ‘무조건적인 신뢰’였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서운하시려나…)
그렇다, 나는 우리집 강아지에게 길들여졌다. 그것도 아주 다정하게.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집 강아지는 인간과 가장 성공적으로 협업한 종이었고,
진화적으로 성공한 종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다정함의 진화는 이미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 그래도 남의 집 강아지는 아직도 좀 무섭다…)
이 놀라운 부분 때문에 같은 작가의 다른 책 ‘개는 천재다’ 도 읽게 되었다.
내 옆에서 마냥 해맑게 꼬리콥터를 돌리는 이 강아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마무리 – 다정함은 전략이다
이 책은 나에게 ‘희망’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소통의 기술, 공감의 힘, 다정함이라는 본능이
진화의 결과물이자, 앞으로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가장 약해 보였던 다정함이,
사실은 가장 영리한 생존 방식이었다는 점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그보다는, “나는 다정한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도, 내 손끝의 작은 다정함이
누군가에게 생존의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
(본 포스팅은 책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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