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눈물을 마시는 새』 리뷰

뒤늦게 만난 한국 하이판타지의 압도감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계보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이영도 작가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될까. 아니면 『구운몽』이나 『금오신화』 같은 고전의 환상성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넓게 보면 한국 문학에는 오래전부터 환상적 상상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말하는 장르로서의 한국 판타지 소설은 1990년대 PC통신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러니 한국 판타지가 이영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1997년 하이텔 연재를 거쳐 199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한국 판타지 붐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영도가 한국 판타지를 대중 독자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작가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판타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이영도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판타지 소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눈물을 마시는 새』라는 제목은 오래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크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이 작품이 프랑스 대표 장르문학상인 그랑 프리 드 리마지네르 외국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20년도 더 전에 나온 한국 판타지 소설이 번역되어 해외 장르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책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에는 몰입이 조금 어려웠다. 세계관이 낯설었다. 나가, 레콘, 도깨비, 인간이라는 네 종족의 관계도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전투 장면이나 무기 묘사는 머릿속에 바로 그려지지 않아 읽는 속도가 자주 늦어졌다. 네 권이라는 분량도 만만치 않았다. “판타지니까 쉽게 읽히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초반 몇 챕터에서 그만둘까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돌이켜보면 2권을 읽는 시점까지도 그 생각이 좀 들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의외의 친숙함이 자꾸 느껴진다. 나가, 레콘은 생소하지만 두억시니와 도깨비, 보늬와 나늬 같은 단어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특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어 같지만 한국어 같지 않은 고대 아라짓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세히 읽으면 왠지 알 것 같고 그냥 읽어도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지만 정말 그런 의미냐고 물어보면 확신하기는 어려운 묘한 언어였다.

그래서 읽는 내내 궁금했다. 이 단어와 문장들을 해외 번역에서는 어떻게 옮겼을까. 2022년 세계 17개 언어권에 한국 단행본 역사상 최고 선인세로 수출되었고, 프랑스 장르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하니, 그 번역가들의 실력이 대단할 거라는 짐작만 할 뿐.

엘프나 드워프 같은 서양식 판타지 문법에 익숙해진 내게 이영도의 세계관은 신선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하면 널리 알려진 서양식 종족과 마법 체계를 먼저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한반도의 말, 신, 놀이, 감각, 정서로도 이렇게 거대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네 종족, 그리고 네 신의 이름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세계는 인간, 나가, 도깨비, 레콘이라는 네 선민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케이건 드라카, 레콘 티나한, 도깨비 비형 스라블 3인으로 이루어진 구출대가 나가 1인을 구해내는 여정이 전반부를 차지한다. 후반부에는 이 세 명이 수탐자가 되어 신들을 찾고 전쟁이 마무리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신과의 관계, 왕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등의 묵직한 주제들을 끌어내는 소설이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보면 왕이 사라진 세계에서 왕을 다시 세우는 이야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왕자 케이건 드라카는 바라기라는 왕국의 상징과도 같은 검을 훔쳐(?) 나오면서 왕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후 왕국이 멸망하고, 800년의 시간 동안 왕이 부재한다. 그리고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그가 왕을 다시 세우는 내용이라고 보인다. 물론 이 내용이 전부도 아니고, 엄청난 반전과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유독 내게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이 800년의 시간 동안 이 세계에 정체를 만들어버린 인간신과 케이건 드라카의 비밀이었다.

네 종족에게는 각자가 섬기는 신이 있다. 지수화풍 네 원소를 의미하는 네 신의 이름부터 아름답고도 적절하다. 바람을 상징하는 ‘어디에도 없는 신’, 땅을 상징하는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불을 상징하는 ‘자신을 죽이는 신’, 물을 상징하는 ‘발자국 없는 여신’. 그리고 이 신들을 섬기는 인간, 레콘, 도깨비, 나가는 각자가 섬기는 신들을 닮은 듯 아닌 듯 하다. 어찌 보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면을 여러 종족으로 빗대어 나눠 놓은 느낌일 듯 하다.

나가는 발자국 없는 여신을 섬긴다. 심장을 적출해 심장탑에 보관함으로써 불사에 가까운 생명을 얻으면서 죽음을 정복한 나가는 일면 불사를 얻고 평화롭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그들은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정적이다.

레콘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을 섬긴다. 신체적으로 거대하고 강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숙원이 중요하다. 이들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게 받는 별철로 만든 일생의 무기를 갖고 자신의 숙원을 위해 살아간다. 모든 무게를 지탱하는 땅처럼 자기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면서 살아간다.

도깨비는 자신을 죽이는 신을 섬긴다. 신과 같은 불을 다루는 힘을 가졌지만, 피와 폭력을 두려워한다. 모든 것을 태우고 자기 자신마저 태워 없애는 불의 신을 섬기면서도, 도깨비는 놀이와 평화를 사랑한다. 이 모순이 참 좋았다.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진 종족이 가장 폭력을 두려워한다는 설정.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가졌을까. 인간은 레콘만큼 강하지도 않고, 나가처럼 불사에 가깝지도 않으며, 도깨비처럼 불을 다루지도 못한다. 인간은 네 종족 중 가장 약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왕이란 무엇인가

작품 속에서 인간은 왕을 찾아 헤매는 종족으로 이야기된다. 아라짓 왕국이 몰락하고 북부에서 왕이 사라진 뒤 약 800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은 왕을 찾거나, 혹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로 그 800년은 ‘왕을 잃은 시대’였을까. 어쩌면 그 시간은, 인간이 왕 없이도 살아볼 수 있었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제1차 대확장 전쟁 이후 나가가 다시 북쪽을 위협하기 전까지, 어쩌면 그 기간은 오히려 왕이 필요 없는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평화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세계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왕이 없기에 왕을 찾는 이들과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계속 있어왔다. 특히 왕이 되고자 하는 자들, 본인이 아라짓 왕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제왕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자기가 세상을 구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 어리석음은 판타지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자 북쪽은 왕을 필요로 한다. 왕의 상징인 바라기 검을 가진 케이건 드라카가 인정한 왕을 세우고, 많은 희생 속에서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결국 작품은 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케이건은 수수께끼를 낸다. 물을 마시는 새, 독을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중 어느 것이 가장 빨리 죽는가. 그의 답은 눈물을 마시는 새다. 눈물은 인간이 해롭기 때문에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 마시는 왕은 오래 살 수 없다. 왕이란 백성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바라봐 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몸 안으로 끌어들여 감당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새일까. 새는 네 종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땅에만 머물지도 않고, 하늘에만 있지도 않다.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존재. 그래서 새는 어느 한 종족의 대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 사이를 잇는 존재처럼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왕은 인간만의 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품 속 왕은 인간만을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 네 종족 모두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이해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신이 인간에게 준 ‘나늬’라는 존재의 의미를 알 수가 있다. 책의 초반에 묘사가 나온다. 나늬는 어떤 종족이 보더라도 아름답게 느끼는 존재라고. 처음엔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미모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 공통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힘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도, 불사도, 불의 권능도 아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은 서로 다른 존재들을 마주 앉히고, 대화하게 만들고, 끝내 함께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결국 이 작품은 네 종족의 차이를 통해 인간의 여러 면을 나누어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죽음을 통제하려는 욕망, 자기 숙원을 향해 돌진하는 의지,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불을 가진 모순, 그리고 왕을 찾고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정치적 본능.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얼굴일테다.


800년의 정체가 끝나는 자리에서

이 소설을 킬링타임용 판타지라고 부르기엔 좀 무리가 있다. 읽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보다 생각이 자꾸 멈춰 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네 종족의 설계, 왕의 정의, 그리고 800년간 세계의 정체를 만들어낸 케이건 드라카의 비밀. 그 비밀이 마침내 드러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스포일러를 쓸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닫혀 있던 800년이 열리는 방식이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다음은 『드래곤 라자』부터 순서대로 읽어볼 생각이다.


기록해두고 싶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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