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황석영 『할매』 | 인간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 생명의 자리로

사람이 없는 소설

『할매』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인가 싶을 만큼 사람의 흔적은 거의 없고, 새와 바람과 물과 땅만 있었다. 철새들의 기나긴 여행이 이어졌다. 새들은 자연 속에서 먹고살고, 새끼를 낳고, 죽었다. 별것 아닌 듯한 그 과정을 작가는 아주 오랫동안, 덤덤하면서도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게 맞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새 이름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읽다가 자꾸 멈칫했다. 새한테 이렇게 많은 이름이 있었구나. 아, 이거 과학잡지인가?

그리고 계속 생각했다.

‘대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지?’


개똥지빠귀의 죽음

처음 등장하는 개똥지빠귀가 주인공인가 했는데, 어느 순간 그냥 죽어버렸다.

헉.

그런데 그 죽음의 묘사가 참으로 희한한 방식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거대한 자연 앞에서, 본능에 충실하게 살고 새끼를 낳고 죽는다. 그 모든 과정에 인간이 의미를 붙이는 방식의 슬픔도 연민도 사랑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작은 개똥지빠귀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이 자연이었다.


할매는 언제 나오나

죽은 개똥지빠귀의 몸속에 있던 팽나무 씨앗 하나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생각했다.

‘아, 대체 할매는 언제 나오는 거야.’

제목의 ‘할매’는 내가 아는 부산 사투리의 그 할매인가. 다른 뜻이 있는 건가. 표지에 Grandma라고 쓰여 있으니 분명 그 할매인 것 같은데. 우리에게 친근한 단어, 엄마아빠보다 더 친근한 그 할매의 존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문득, 설마 이 나무가 주인공인가 싶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어느 순간 그런 의문들은 모두 사라지고, 나는 팽나무와 함께 한반도를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팽나무 곁의 사람들

조선시대를 지나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백성과 민중이 고통을 겪고 사라졌다. 그 곁에는 언제나 팽나무가 있었다. 팽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었다. 힘든 시대에도 자연 속의 다른 생명들처럼 그럭저럭 살아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겠지. 그때는 정말 그랬겠지.

나는 오래전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워 보였던 개똥지빠귀의 삶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아름다워 보였다.


새만금, 마음이 무너진 자리

그런데 이야기가 근현대를 지나 새만금의 시대로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너무 아팠다.

수천 년, 수만 년을 묵묵히 살아온 자연이 이렇게 우리 앞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무참하게 자연과 생명을 짓밟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 와중에도 인간들은 이해관계를 따지고 이익을 다투며 자연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마음대로 처리한다. 방조제 건설을 막으려는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행정적으로, 제 이익을 따져서,

콘크리트를 툭.

그 장면을 읽으며 느낀 어이없음은 이상하게도 ‘인간인 내가’ 느끼는 감정 같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일 뿐인 내가 느끼는 감정 같았다. 그 순간 부끄러워졌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자연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보존할지 개발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고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은 아닐까.

수만 마리의 조개가 붉은 갯벌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장면에서는 내 심장까지 함께 말라가는 듯했다. 산소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조개가 죽는 장면이 아니었다. 하나의 세계가 숨을 잃어가는 장면이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배동수가 갯벌에서 들었다는 거대한 합창 소리. 그리고 유 방지거 신부가 팽나무를 감싸 안았을 때 들려온 말.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꼭 우리의 할매가 한참 만에 돌아온 손자를 붙들고 하는 말 같았다.

그 문장에서 팽나무 할매의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정말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거기서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팽나무는 아직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곁의 수많은 생명은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생명들이 버틸 수 있을까.


책을 덮고

책을 덮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연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라, 애초부터 자연 속에서 잠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할매』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황석영이 이런 작가라면, 『철도원 삼대』도 읽어야겠다.

그리고 팽나무를 직접 보러 가고 싶어졌다.


황석영, 『할매』, 창비, 2025. 군산 하제마을에 600년 넘게 서 있는 팽나무를 화자로 삼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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